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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여행의 묘미중 하나가 여러 사람들과의 인연이라는데 오늘은 정말 수많은 도움을 받아가며 채운 하루 였다.
본래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11시 기차로 정동진을 향하려고 했는데 청량리에 도착하니 예정도다 한시간 빠른 9시 45분이었다.
여기서 또 무계획 본능이 발동한 나는 같은 경로를 가는 10시 열차를 탔고 중간에 적당히 마음에 드는 역에서 내려 한시간을 기다렸다가 11시 차로 갈아타기로 했다.

 야간열차에서 자는게 익숙해질만도 한데 어젯밤은 영 잠이 오질 않아 좌석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창밖으로 보이는 역사 건물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예천역에 무작정 내렸다. 무거운 가방을 맞이방에 남겨두고 PC로 이글루스도 끄적거리고 잠시 화장실도 다녀오니 한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강릉행 다음 열차가 도착했고 가방을 매고 열차에 타려는데 함께 열차를 기다리던 아저씨가 옆에와선 '학생, 관광지에서 열차 기다릴땐 가방은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되요. 아까도 내가 보고있지 않았으면 가방 도둑맞았을거에요.'
라고 말씀하시는거다. 그러고 보니 맞이방에 수염을 길게 기르고 허름한 패딩을 입은 아저씨가 한사람 더 있었는데 보이질 않는다.
 몇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하며 정동진행 여정을 계속했다.

 막상 정동진에 도착하긴 했는데 일출은 아직도 두시간이나 남았고 일출을 보고난 이후의 계획도 없었다.
'어쩌면 좋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기념스템프를 찍고 있던 내일러 두명을 만났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흘러온 나와 달리 둘중 한명은 아주 꼼꼼하게 계획을 짜서 오늘로 여행을 마무리 짓는 날이었고 한편, 오늘로써 내일로 여행을 시작하는 다른 한명은 숙소나 대략적인 계획만 잡았지만 내일로 여행에 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해는 고맙게도 낮게 깔린 안개와 구름사이의 작은 틈바구니로 떠올랐고 흥분의 도가니를 틈타 스리슬쩍한 동행제안을 두명은 흔쾌히 받아주었다. 덕분에 오후3시 까지는 강릉의 오죽헌도 둘러보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경포대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짜임새 있는 여행은 그 나름대로 꽉찬 느낌이란 장점이 있다는걸 느꼈다.

동대구로 향하는 오후의 영동선은 무척 한가했다. 우리 세명은 앞으로의 일정이나 지금까지의 여정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웠고 지난밤 다들 자는동안 그냥 지나쳐온 영동선의 스위치백 구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승무원 한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내일로 여행중이세요?"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하고선 스위치백 구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한시간여 동안 승무원 아저씨는 스위치백 구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라거나 영동선의 똬리구조. 다른 내일러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박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놓으셨고 다른 승무원 한분은 스위치백 진행이 잘 보이는 곳이라며 열차의 맨뒤칸까지 직접 우리를 대리고 가서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주시며 이야기를 해주셨다. 혼자와서 그저 책이나 읽고 지나쳤으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이야기들이었다.
 
헤어지는게 아쉽긴 했지만 일행의 다음 목적지인 안동에선 내가 숙박을 해결하기가 곤란했고 또 여행에 대한 취향문제에서도 달랐기에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져 승부역에 내렸다. 내일은 태백선을 관광할 일정이어서 이 지역은 두시간여만 돌아다니다 다시 상행선을 타고 도계역으로 돌아가 내일아침 태백선을 탈 예정이었다. 과연 승부역은 전국에서도 가장 오지에 있는 역이란 명성에 걸맞게 주변에 조명이라곤 역 주변의 백색등 뿐이었고 난 별구경을 하려 어둑어둑한 산속의 산책로로 들어갔다. 조금 있던 역 주변의 조명과 달마저 산뒤로 가리자 하늘에는 정말 쏟아질듯한 별무지가 나타나 마음을 빼앗겼고 난 이왕 들어온거 산책로의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한 10분을 들어왔을까? 산속 저 멀리서 어른어른거리는 불빛이 보였다. '뭐지? 저런 곳에 가로등이 있나? 혹시 도깨비 불인가?' 불안도 잠시, 산속에서 모습을 드러낸건 헤드랜턴을 쓴 아저씨와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한분이었다.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구석지방에서 그것도 한밤의 숲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분은 나에겐 두려운 한편 꼭 산신령같이 보였고 그중 헤드랜턴을 쓴 아저씨는 진짜로 산신령 같은 제안을 해오셨다.

 '이런 아무것도 없는 산길에는 오밤중에 뭐하러 들어왔노? 우린 지금 태백으로 갈껀데, 데려다 주리? 여긴 잘곳도 없을텐데'

나는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였고 산길을 트럭으로 달리고 달려 한시간여 만에 태백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분은 감사의 인사도 받으시는 둥 마시는 둥 하며 홀연히 다시 트럭을 몰고 떠나셨다.

 아무리 머리를 써도 추전역을 들르면 아우라지로 가는 꼬마열차를 탈수가 없어서 추전역 방문은 포기하고 있던 참에 갑자기 생각치도 못한 여유시간을 가지게 된 나는 이대로 추전역을 방문해 그곳의 맞이방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내려와 새벽기차를 타기로 마음먹었고 여러사람들에게 묻고 물어가며 추천역을 향해 2시간짜리 야간산행을 시작했다. 신기했던 점은 제대로된 이정표도 없는 산길에서 길을 잘못들어설 때마다 산중의 오두막 집에서 누군가가 나와줘서 물어볼 기회가 있었단 거다. 산길을 오르길 두시간. 어둠속으로나마 어렴풋이 보이는 주변 절경이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역. 추전역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속에서 뜬금없이 나타나 창을 두드린 나를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다.)역무원 두분은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따뜻한 차도 권해주었지만 영 곤란한 표정을 지으셨다. 이곳은 여객업무를 하는 역이 아니어서 맞이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무 정보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나 자신에겐 모험일지언정 다른이에겐 폐가 됬던 것이다. 내 억지로 규정을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저 산길을 다시 또 2시간을 걸어 태백까지 내려가라 하기엔 너무 안쓰러웠는지 역무원중 한분께서 자신의 자동차로 태백까지 태워주셨다.

심지어 그렇게 도착한 태백의 찜질방은 착한 가격에 만화책이 그득그득하고 컴퓨터는 무료인 축복받은 환경.
줄여 쓴다고 썼건만 이정도니 여태까지의 여정중에서도 가장 많은 일을 겪고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가장 많이 감사했던 하루였다.

내일은 태백선을 타고 아우라지행 꼬마열차를 탄 후 중앙선의 간이역인 구둔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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